2026년 6월 26일 금밤
2026년 6월 26일 금밤
찬송: 195장
본문: 역대가 19장 2절
여호사밧의 실수와 그로 인한 결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입니다. 실수 없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여호사밧도 참 훌륭한 왕인데 실수를 했고 실수 자체가 큰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인데 그 결과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사람이 단점만 보면 세상의 그 누구도 쓸모있는 사람은 없다고 할만큼 단점을 가졌고 몹쓸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장점을 다 묻어놓고 나쁜 점만 뽑아놓으면 대개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늘 양면을 같이 봐야합니다. 이 면도 보고 저 면도 보고, 여호사밧의 실수를 살피다 보면,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 보니까 아주 안 좋은 사람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유다 나라의 많은 왕 중에서 아버지 아사 보다도, 조금 전에 교독할 때 하나님께서 여호람에게 꾸짖지요. 네 아비의 길로 가지 않고, 아사왕 보다 더 훌륭한 왕이 여호사밧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다 준수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래서 에녹이 가장 위대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고 365세에 하나님이 데려가셨으니까, 죄가 없다는 뜻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뜻이고 모든 계명, 모든 뜻을 다 준행했다는 거고 300년 동안 했다. 그 에녹도 결혼했거든요, 아내가 있었고 자녀도 있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에게 피동받지 않았고 동행한 것이 300년이었다. 여호사밧은 그 정도는 아닌데 지켰습니다. 우상을 다 버렸습니다. 어떤 우상도 다 버리지 않았습니다. 선견자 예후가 아사왕 때 선지자일 겁니다. 두 가지 짚으면서 장점을 만하면서 다 없애면서 찍어서 말했습니다. 모든 우상을 다 없애버린 사람이 여호사밧이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초급 우상은 없어도 중급 우상 고급 우상이 온 세상에 가득 찼고 교회 안에 가득 찼고 우리 속에 가득 찬 시대입니다. 우상이라는 것은 뽑기 쉽지 않습니다. 옛날처럼 형상을 만들어 놓고 하는 우상은 안 믿는 사람들도 안합니다. 자기 속에 있는 여러 요소들이 여호사밧은 어쨌든 우상을 타파 다 했습니다. 백성을 잘 선도해서 그렇게 잘 이끌었고 하나님만 의지했다. 이거 참 어렵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그 머리 좋은 것을 의지 합니다. 부모가 잘나면 의지합니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손에 뭘 들고 있으면 휘둘러 보고 싶고 찔러보고 싶고, 총을 들고 있으면 참새라도 쏘아보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돈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고 드러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저절로 줄어듭니다. 히스기야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전적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을 불치병이 나았는데 바벨론 사신이 왔을 때 하나님의 능력도 보이지 않고 눈 앞에 있는 아무것도 아닌 거 보여줬습니다. 얼마나 진노하셨겠습니까. 그래서 히스기야는 한참 여호사밧보다 못합니다. 히스기야도 대단한 왕인데, 여호사밧은 그런 거 없습니다. 군사가 116만명, 그런 대군을 두고도 하나님 앞에 못 이긴 줄 알고 그런 겁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장을 가지면 주일 빼먹는 게 예사고 대기업에 다니면 주일 빼먹는 게 예사인데 우상입니다. 예배를 우습게 여기는 게 우상입니다. 뭔가를 가지면 그걸 의지하지 쉽지 않은데, 여호사밧은 다 가졌는데도 하나님만 의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켰다. 아는 대로 계명 다 지켜야겠다. 우상을 다 타파해야겠다. 보이는 우상은 안 섬길지라도 내 속에 하나님보다 나를 끊은 요소가 뭔지, 연결이 다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거라고 우상 타파하는 것이 연결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생각보다 하나님 사모모다 사랑보다 기뻐하시는 것보다 나의 언행심사를 강하게 하는 것이 뭐냐, 그게 굉장히 많습니다. 여호사밧은 그런 게 없습니다. 백성을 잘 선도했습니다. 1등 목회자, 1등 구역장, 1등 반사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겠다, 기억을 하시고, 여호사밧은 아버지가 아사였고 할아버지가 아비야였고 르호보암이었고, 르호보암은 못한 왕입니다. 손자보다도 못한 왕입니다. 아버지 보다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비야는 아버지보다 나았고 아사는 더 나았고 여호사밧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보다 증조할아버지보다 더 나았습니다. 내려갈수록 좋았지요.
여호사밧의 실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실수로, 윗대로 잘 내려온 거까지 잘 했는데, 자기 시대에 옆으로 인간 관계 수평으로 잘못함으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참혹하게 했다고 만들었지요, 이것은 여호사밧의 문제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이름이 아하스입니다. 아하스는 또 아주 나쁜 왕입니다. 온 나라에 우상을 다 채운 아주 나쁜 왕인데 히스기야가 나왔습니다. 그 밑에서 아버지의 잘못을 끊어버리고 새롭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지막에 망령을 부렸으나 그런 왕이었습니다. 윗대에서 나를 기준으로 아버지 할아버지, 부모님이 잘못 살아서 죄를 많이 지으면 내 대에서 끊어버리면 됩니다. 위의 조상들이 좋은 점을 내려주면 계승해서 발전시키면 되는 겁니다. 1대보다 2대가 그래서 솔로몬이 망령을 부려서 르호보암 때 갈라졌고 여호사밧까지는 점점 개선 발전이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수평적으로 잘못했다 할지라도 여호람 때가서, 여호사밧의 실수를 공부하니까 그렇지만 여호람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결혼시켰습니다. 역사 성경 신앙 각도에서 보니까, 우상 섬기는 집안의 딸을 데려오다가 그 아들이 죄를 짓는 게 당연한거요. 당연합니까.
우상 섬기는 집안의 딸을 데려다가 아들과 결혼시켰으니까 미혹을 받아서 우상 섬기고 죄를 짓는 게 당연한가요, 당연한 거 아니지요. 잘못된 겁니다. 아버지가 그런 여자를 결혼시켜줬으면, 그때 인간이 바로 되었으면 아내를 만들어야죠 사람을, 안 만들면요, 적어도 따라가면 안되지요. 그런데 여호람 문제가 그겁니다. 여호사밧 실수가 큰데 쉽지는 않으나 그렇게 결혼됐으면 남자니까 아내를 잘 가르치고 타이르고 기다리고 설득시키고, 여인을 이끄는 방법이 뭐라고 했습니까. 좋은 말로 살살 달래면 된다고 했지요. 살살 꼬아서 달래서 신앙의 길로 인도하면 더 좋은 거지요. 남자들의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고 쓸모있고, 요긴하고,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야할지, 아내를 잘 만들어 놓으면 어떤 사람보다도 좋은 겁니다. 아내를 이세벨을 닮았으니까 예뻤을 것이고 실력도 있었을 것이고 많은 걸 다 갖췄겠지요. 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1등 왕후가 되었을 건데, 잘했으면 그런데 등신같이 되어가지고 아내가 나보다 깨달음이 깊고 높고 밝아서 부족해서 따라가는 건 좋은 겁니다. 배워가면서 자라가면 되니까, 언젠가는 남자가 앞에 서야합니다. 거기 끌려가니까 문제가 되는 거지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음이라, 당연한 것이 아니고 여호람이 못한 거지요.
아합도 이세벨에게 충동되어서 스스로 팔려 죄를 지었는데 여호람이 그렇게 결혼했으면 가르치고 타이르고 옳은 길 바른 길로 인도하면되는데, 아들에게 빠졌다 팔렸다는 것은 그래서 여호람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넓게는 하나님 역사고, 여호사밧은 실수했고, 여호람은 아버지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자기 문제입니다. 아담이 선악과 따먹고, 내가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아담이 뭐라고 했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여자가 줘서 먹었습니다. 나쁘고 비겁한 놈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 말 들어라고 했냐, 여자 머리가 남자인데, 천하 모든 사람이 여자 말 듣는다고 하더라도, 신앙은 모계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자녀를 믿음의 사람 만드는 건 어머니입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인데 쉽지는 않으나 성경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힘으로 무력으로 그냥 남자는 위치로 이거 비겁한 것이지요. 못난 것이고. 그래서 권위라는 것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 겁니다. 여호람의 잘못입니다.
여호사밧은 아버지로써 잘못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 실수지, 노아가 홍수가 끝나고 나서 포도 농사를 지었고 포도주를 마셔서 술에 취해서 벌거벗어 누웠습니다. 노아의 실수입니다. 승리 후에 긴장했고 풀렸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함이라는 놈은 그걸 보면 같이 셈과 야벳도 같은 상황이었는데 안 봤습니다. 보지 않았고 자기 눈에 담지 않았고 퍼뜨리지 않았습니다. 뒷걸음쳐서 덮었습니다. 목회자의 단점 실수를 눈에 담으면 실수입니다. 덮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야하고 그런 게 있지만, 노아가 한 실수를 함이 보고 담았고 퍼트렸습니다. 함의 실수의 원인은 노아입니다. 원인 제공의 죄는 큰겁니다. 그런 실수 안했으면 함이 그런 짓 않겠지요. 노아는 노아 실수로 그랬고 함은 그대로 퍼트리는 요소가 함에게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노아의 실수는 따로 있고 함의 실수는 따로 있는 겁니다. 여호람은 자기 문제입니다. 좋은 것은, 계승 발전 시키면 복입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끊어버리면 됩니다. 좋게 바꾸면 됩니다. 모든 사람은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권성이 있습니다. 주권성과 자유성은 같은 겁니다.
아버지가 그런 아내를 줬으면 잘 이끌어서 했으면 되는 것이고 끌려가면 안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하는 짓 보니까, 다른 아들들에게는 금은보화하고 성들을 주고 여호람을 왕을 시켰는데 동생들을 다 죽였습니다. 나중에 보면 저보다 선한 아우를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죽었다고요, 창자에 중병이 들어서 창자가 빠져나왔고 마지막에는 아끼는자 없이 다 죽었고 묘실에 들이지 않았다더라. 왕 자격도 없다는 거지요. 여호사밧의 훌륭한 면을 기억해야하고 여호람의 자기 책임 자기 문제, 그 누구랑 마찬가지입니다. 옆으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의 하나님 앞에 정죄받는 문제는 자기 책임입니다. 그래서 자유의 율법이고 자기 엄밀하게 따지면 모든 심판 받는 죄는 주권 하에서 하는 죄, 자유성 주권성 주셨음으로, 어떤 것도 막을 수 있고 바꿀 수 있습니다. 핑계를 대지 못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대로 다 하면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고 해주십니다.
그래서 못하는 것이 아니고, 안하는 것이 책임입니다. 저를 돌아보며, 자기를 돌아보면 자기가 자기가 알잖습니까, 안했다 그 말이지요. 핑계대지 못한다는 거지요. 여호람을 보고 이런 면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두 가지를 집었는데, 악한 자를 도왔습니다. 왜 여호사밧이 아합과 사돈 맺었는지는 정답은 나와있지 않으나, 짐작으로 르호보암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때 열 지파를 끌고 나가서 왕위 빼앗길까 싶어서 사마리에다가 정통 성전과 비슷하게 만들고 날짜도 비슷하게 만들고 제사장도 가짜를 세워서 하니까 바로 믿으려는 사람들, 그런 제사장 레위 지파 사람들이 다 많이 돌아옵니다. 남북이 갈라진 상태인데, 우리 나라는 철조망 쳐놓고 그런 게 아니고 왕래가 가능한거죠. 우리나라도 625 전까지는 왕래가 많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열 지파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다 쪽으로 많이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아합시대 때 그걸 보는 여호사밧이 그 엉망되는 사람이 엉망되는 나라를 살려보려고 아합을 사귀어서 구원해보려는 동기 아니었을까 싶지만 동기 목적이 옳았다 하더라도 악한 자를 돕는 결과가 되었다. 악한 자를 도왔으니까 악한 일이고 악한 일은 하나님의 일과는 반대입니다. 악은 선과 반대입니다. 악은 피조물 중심입니다. 하나님 빼놓고 인간익 세상이고 전부 악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와는 반대 되는 것이지요. 어떤 동기로 했는지 모르겠으나 악한자를 도왔고 사귀었고 사랑했고
우리는 악한자를 돕습니까. 악한자는 누군가, 모든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맺어준 관계고 나를 기준으로 한 모든 인인 관계는 내게 일정한 책임이 있습니다. 가까울수록 점점 커집니다. 부부라면 하나입니다. 서로에게 책이미 큽니다. 부모자녀라면 형제라면 책임 있습니다. 이웃도 책임이 있습니다. 사람 사는 관계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맺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맺어진 인간관계 때문에 원인되고 원동이 되어서 여러 가지 작용 역사들이 있게 되는 거지요. 부부기 때문에 서로 하는 언행심사가 있습니다. 부모 자녀면 부모 자녀기 때문에 혈육으로 맺어졌으니까. 형제도 그렇고 양떼도 그렇습니다. 관계 속에는 관계로 말미암은 역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단순한 단순이 사명 역할 책임 이게 있는 게 아니고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관계로 인해서 인간관계가 원인되고 원동되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질 때, 그래서 여호사밧은 아합과 더불어 이런 관계 때문에 도왔습니다. 사랑하게 되어졌고, 관계를 안 맺었으면 상관이 없는데, 여호사밧이 아합과 함께 연혼하게 된 이유가 부귀영화가 극에 달하였더라.
여호사밧은 그랬고 우리는 악한 자를 돕느냐, 나와 관계 있는 사람이 악한자면 안 돕겠습니까. 나와 상관이 없는 그 악한 자가, 악한 여인 아달랴라고 되어있습니다. 아달랴에게 왜 끌려갔습니까. 왜, 아내니까. 아내니까 끌려갑니다. 아내니까 끌려간 겁니다. 부모가 탈선하는 자에게 왜 끌려가지요, 자식이니까 죄 지으려고 끌려갑니까, 탈선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구원하고 싶어서 구원하려고 그런데 구원하려고 하는데 그 자녀가 악을 행한다면 도와야할까. 구원이 목적인데 다른 사람은 뇌물 받는 거 눈 감아주고, 뇌물 받으면 당신 못 믿겠으니까 100만원 받고 그러면 교회갈게. 받아야합니까. 받으면 악의 동참인데, 자식이 그러면요.
자식이 아버지에게 그러면요, 그때도 안합니까. 직장 동료가 악을 행할 때는 안할 수 있는데 자식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요. 구별하지 않고 잘못하면 끌려가는 겁니다. 그래서 구원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면밀하게 잘 살펴서 힘을 보태주는 것이 이게 그런 관계있는 사람에게 유익이 될 것인가, 말씀을 어기면 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말씀 어긴 건 아닙니다. 도왔지, 가까운 사람이 악을 행할 때 안 도울 수 있을까, 멀리 가지 말고 혈육, 자녀라면. 참 어렵습니다. 성경은 결과적으로 악한 자를 도왔다, 엘리 제사장이 나쁜 제사장이 아닙니다. 위대하고 훌륭한 제사장입니다. 실수는 자식을 못 다스린 거 하나입니다. 사무엘 자식들도 탈선했습니다. 그래서 생긴 제도가 왕 제도입니다.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들들 못 믿겠다고 했지요. 엘리가 할수있는데. 왕이 악한 자를 돕고, 누구를 도울까, 내 속에 있는 악한 자는, 내 안에 있는 악한 요소, 악성 악습입니다. 이걸 돕는다. 사람은 자체가 있는 거지요. 인격성이 있습니다. 그 자유성이 한 성품요소와 습성으로 몸에 입어서 눈감아주는 그런 요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악을 돕는 게 되는 겁니다. 알고도 눈감아주고 끌려가는 거지요. 그러면 악은 점점 커지게 되는 거지요.
오늘 밤에 세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여호사밧의 신앙면을 생각해봤고, 아버지 여호사밧이 핑계댈 수 없습니다. 자기가 만들어갔어야하는 겁니다. 여호람에게 주권성 자유성있는데 엉뚱한데 써먹었습니다. 여호람의 실수, 여러 면을 생각해봤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